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여행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남길 사진이 거의 없었던 날

by goodnewreader 2026. 1. 15.

여행 사진은 많았는데 남길 게 거의 없었던 하루

그날 찍은 사진 수는 평소보다 많았다. 이동 중에도 찍었고, 멈춰 설 때마다 한 장씩 남겼다. 화면으로 확인할 때마다 구도가 크게 어긋난 사진은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 사진을 옮기고 하나씩 넘겼다. 삭제하지 않고 남긴 사진보다 넘겨버린 사진이 더 많았다. 흔들림이나 노출 문제는 아니었다. 장소도 분명했고, 기억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선택하려고 멈추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

첫 번째 실패, 많이 찍으면 남는다는 기준

그날의 판단 기준은 촬영 개수였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찍어 두면 나중에 고를 수 있을 거라 봤다. 그래서 셔터를 누를 때마다 이전 사진과의 차이를 따로 확인하지 않았다. 비슷한 위치, 비슷한 높이, 비슷한 시선에서 찍힌 사진들이 쌓였다. 나중에 보니 사진 하나하나가 틀리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대체하고 있었다. 이 기준이 위험했던 이유는 선택의 기준을 촬영 시점이 아니라 나중으로 미뤘다는 점이었다.

조건이 겹치면 생기는 공통 오판

이런 결과는 특정 조건이 함께 있을 때 반복됐다. 첫째, 일정이 촘촘해 멈춰서 생각할 시간이 없을 때다. 이동 중 촬영이 많아지고, 판단은 자동으로 처리된다. 둘째, 장소가 계속 새로울 때다. 새로움 자체가 기준이 되어 사진 안의 차이를 보지 않게 된다. 셋째, 기록 목적이 강할 때다. 기억을 남긴다는 이유로 선택이 미뤄지고, 결과적으로 남길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 조건들이 겹치면 사진은 늘지만 판단은 줄어든다.

기준이 바뀌게 된 지점

이후에는 촬영 결과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대신 셔터를 누르기 전에 하나를 먼저 봤다. 이 장면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였다. 이전 기준이 ‘지금 안 찍으면 놓칠 것인가’였다면, 이후 기준은 ‘이 사진이 다른 사진을 대신할 수 없는가’로 바뀌었다. 찍지 않는 선택이 실패가 아니라 판단이라는 쪽으로 기준이 이동했다.

상황에 따라 사용한 선택 기준

장소가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는 같은 높이에서 연속으로 찍는 선택을 줄였다. 이미 찍은 사진이 하나라도 떠오르면 셔터를 잠시 멈췄다. 반대로 오래 머무는 장소에서는 첫 장면보다 마지막 장면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동 중 촬영이 포함되면, 기록용과 선택용을 같은 기준으로 보지 않았다. 이 기준들은 결과를 예측하기 위한 게 아니라, 판단을 앞당기기 위한 도구였다.

다음 여행에서 먼저 보게 되는 것

이제 사진을 많이 찍는 날이 와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대신 셔터를 누르기 전, 이 장면이 다른 장면과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본다. 나중에 고를 수 있을지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 선택할 수 있는지를 본다. 그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사진 수는 줄고 남는 사진은 늘어난다.